화난코더


아래 동영상은 마이클 조던이 두번째 현역으로 복귀했을 당시의 플레이 믹스 동영상입니다.
은퇴 후 3년 6개월간의 공백을 딛고 40살에 현역으로 복귀하였을 때의 플레이입니다.
50살에 현역으로 복귀 할 수도 있다는 말에 왠지 기대감이 가네요.




중간에 덩크를 실패하는 장면도 나오네요. ㅎㅎ 체력은 예전 같이 않았지만 관록을 보여주는 동영상입니다.
워싱턴위저즈에서 두 번째 현역생활을 하는동안의 기록은 평균 20득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했하였습니다.



2009/09/18 - [Life story/스포츠] - 명예의 전당 헌액 조던 "한계는 착각이다"


Posted by 화난코더

마이클 조던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행사 연설중에
"한계나 두려움은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50세에 선수로 뛰는 모습을 볼게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답니다.

다이어트만 성공하시면 정말 50살에 현역으로 복귀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50살에 현역으로 복귀한 모습이 궁금하네요. -_-ㅋ

아래 동영상은 한국나이 1963년생인 마이클 조던이 살럿밥캣츠 선수들 연습에 참가해 한 수 가르쳐 주는 동영상입니다.  조던의 페이더 웨이는 여전히 위력적입니다. 구단주와의 연습 이후 살럿선수들이 우승후보권의 강팀들을 많이 잡아줬었습니다.





명예의 전당행사 연설동영상입니다.








Posted by 화난코더

경찰들이 메즈 스킬을 걸고 다구리 치네요.
혹시 실제 경찰이 아니라 경찰이 조폭에게 용역을 준것이 아닐까요?
2MB 정부와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잃어버린 10년이
되었습니다. 과거 10년이
더욱 아쉬워지게하는 동영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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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화난코더

리니지2 현모 이야기

2009. 9. 16. 11:31 : 기타

리니지2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사무실에서 읽다가 뻥 터졌습니다. ㅎㅎ


[Talk] 라른의 요절복통 리니지2 이야기

원문보기


안녕하세요 라른이에요^^
최근 오픈한 이벤트 “요절복통 리니지2 입문기”에 많은 분들께서 글을 올려주셔 너무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답니다. 읽다 보면 옛 생각이 새록 새록 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는..ㅎㅎ

얼마 전,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과 춤을 즐길 수 있는 곳(?!)에 갔을 때 깜짝 놀랬답니다.
많은 분들께서 즐겁게 춤을 추고 계시던 중!! 신기한 춤을 추고 있는 한 분이 눈에 띄었는데요.
그 신기한 춤이라는 건 바로…………
여자 휴먼 법사의 소셜 액션 춤을 추고 계셨던 것;;;;;
저 분도 리니지2를 하시는구나~ 직업은 플핏?! 하면서 속으로 엄청 웃었답니다.

<휴먼 여법사의 앙증맞고 귀여운 춤을 현실에서 보게 될 줄은... /춤 ㅎㄷㄷㄷ;;>

그러고 보니 예전에 리니지2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문득 생각이 나는데요.
오늘은 그 날의 잊지 못할 사건을 여러분들께 이야기해드릴까 합니다.

때는 제가 한참 공성전을 즐기며 혈맹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희 혈맹원들은 가까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가끔씩 한 PC방에 모여 공성전을 즐기곤 했답니다.
그리고 공성전이 끝나면 밥도 먹고 가벼운 술자리도 가지며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 나가곤 했죠.

<모두가 모인 현모에서 이것이 빠질 순 없죠!! 하지만 과도하면 안되요^^;;>

그러던 어느 주말, 운명의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일요일에 잡힌 공성전을 대비해, 전날인 토요일에 현모를 하고 다음날 공성전을 준비하자는 군주님의 말씀에 서울에서 2~30명의 혈맹원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맛있는 고기와 맥주한잔을 하며 밤이 새는 지도 모를 정도로 리니지2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시계를 보니 밤 12시..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날 있을 공성전을 위해 수면을 취하기로 결정하고 다들 찜질방으로 향했지요.
하지만 찜질방에서도 계란을 까먹으며 리니지2 이야기로 꽃을 피웠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지친 나머지 드디어 하나 둘씩 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찜질방에서 린2 이야기의 꽃을 피웠답니다^^ 즐거운 현모!!>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찜질방에는 다양한 방이 있지요. 황토방, 쑥방, 숯가마방 등등..
각자 취향에 맞는 방에 들어가거나 시원한 곳에서 흩어져 그렇게 우리 혈맹원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따르르릉~~~!!

 

조용한 찜질방의 적막을 깨고 갑자기 엄청난 소리의 비상벨이 울렸고 다들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을 살펴보니, 찜질방 세탁실에서 불이 났고 점차 밖으로 연기가 스며 들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군주님과 저는 주위에 있던 혈맹원을 데리고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만 신고 뛰어나왔답니다. (참고로 한겨울.. ㅠㅠ 덜덜덜..)
그렇게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와 혈맹원들을 찾아보았지만, 그 중 6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순간!! 아까 각자 황토방, 쑥방, 숯가마방에 들어가던 혈맹원들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과음을 한 상태에 잠이 들어 비상벨을 못 들은 건가봐요 ㅠㅠ

찜질방 입구로 들어가려 했지만 소방차가 오기 전 상황이라 찜질방 직원들이 입구를 막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불이 많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위험할지 몰라 찜질방 입구를 봉쇄한 상황;;
직원분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들어가는 건 위험하니, 방송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찜질방 각 방에 방송 스피커가 연결되어 있으니 들을 수 있을 거라며 이름을 말해달라고 하더군요.

직원들에게 이름을 몇 번 반복해서 알려주고 곧 이어 스피커에선 그들의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 “아!! 아~!! 찜질방에서 주무시는 짱구는똥마려님, 성형수술실패님, 57분고통정보님, 곰탐재료푸우님, 내가조선의궁수다님..
그리고…야꼬우면덤벼?! 맞나요? 아무튼 이 님… 빨리 나오세요!! 불났어요!!”

 

그렇습니다..
매일 캐릭터명만 부르는 게임 속 혈맹원들이다 보니 실명은 몰랐던 것이지요..

방송은 입구를 통해 몇 번이고 울려 퍼졌고..
그 상황에 건물 주위에 사람들은 방송을 듣고 하나 둘씩 웃기 시작했답니다…
저희는 너무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입구에서 어서 혈맹원들이 나오길 눈이 빠지게 기다렸죠…ㅠ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엔 좀 부담스런 캐릭터 이름들.. ㅠ_ㅠ>

그 때!! 한 명씩 혈맹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찜질방 직원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안에 사람들 나오고 있나요?!”
“콜록 콜록.. 네.. 나오고 있어요.. 제 이름이 57분고통정보요… ;;;”

다들 나오면서 부끄러운 나머지 고개를 숙인 체 인파에 섞여 들어가고 그걸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웃다 쓰러지고..

다행히 혈맹원들이 모두 나올 때쯤 소방차가 도착하였고 큰 불이 아니어서인지 금새 진화가 되었답니다.
그 추운 겨울날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에 슬리퍼를 신고 덜덜 떨며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기다리다가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된 후 얼른 들어가 옷만 갈아입고 모두 도망치듯 찜질방을 왔답니다.

그 날 새벽.. 그 찜질방에는 사람들의 웃음이 밤 새도록 들려왔다는 후문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웃기고 부끄러웠던 추억이랍니다.

오늘 제가 이 글을 쓰려고 준비 중에 저의 동료 분이 리니지2를 하다가 생긴 재미난 에피소드를 전해 주셨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웃어야 할지…후덜덜;;

리니지2를 하다보면 혈맹원들의 경조사가 있기 마련이고 지역이 가깝거나 아주 친할 경우에는 경조사에 참가하기도 한답니다.

어느 혈맹원의 결혼식이 있어 혈맹원 몇 명이 축하해주러 갔다고 합니다.
막상 결혼식장에 가 혈맹원을 축하해주고 축의금 넣으려 봉투에 찾았답니다.

봉투에 본인의 이름을 쓰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혈맹원이 분명히 내 본명은 모를 것 같고..
직접 전해주자니.. 결혼식 진행 중에 전달하기도 이상하고..
에라 모르겠다 캐릭터 이름을 쓰자!! 하고.. 쓴 이름이..


“사랑과전쟁”


결혼하신 혈맹원께서 나중에 그 봉투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고 합니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무례하다고 화를 내셨다지만 봉투에 쓰인 이름을 이해하는 분들은 무척이나 유쾌하고 즐거웠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리니지2를 하면서 즐거웠던 이야기, 리니지2를 하지 않는다면 절대 알 수 없는 우리들만의 요절복통 이야기.. 혼자만 간직하지 마시고~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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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화난코더

류한석님의 트위터에서 퍼왔습니다.

최근 취업을 압둔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얘기해 주었는데요.
현실이 녹록치가 않네요. 이공계인들 힘냅시다!!!

이명박 대통령, “공고만 나와도 훌륭한 인재”

                                                           원문 주소 : http://bit.ly/p3ToV

이명박 대통령이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가진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참가 선수단 초청 격려오찬에서 “대학에 안 가도, 좋은 학교를 안 나와도 훌륭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인재가 될 수 있다”며 “명문고 안 다녀도, 공업고등학교 나와도 된다”고 말했다.

“요 즘 전부가 다 대학에 가야 하느냐, 또 좋은 대학을 가야 하나?”고 반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분은 고교를 나와서 사회에 진출했고, 여러분 친구는 대학에 갔다”며 “4년 후 대학 졸업하고 회사에 간 사람보다 4년 후 여러분이 더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공평한 사회다”라고 했다.

한편 오찬에 참석한 최문석군은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편리한 청소 로봇을 만들어드리고 싶다”고 해 좌중의 웃음과 박수를 받았고, 그의 어머니 이진숙씨는 “대통령께서 추진하는 마이스터 고교 정책이 꼭 성공해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왔으면 졸겠다”는 희망을 전했다. 또 71년 기능올림픽에 참가했던 유병현씨는 “기능은 산업사회에 산소와 같은 존재”라며 “기능과 기능인이 대우받아야 대한민국 브랜드가 올라간다. 대통령께서 희망을 갖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경제위기에서 한국이 빠르게 회복하는 것은 여러분과 같은 우수한 기능 인력과 국민 모두의 힘 덕택이”이라며 “정부는 기능을 장려하고 기능인 우대 방안에 대해 깊은 관심갖고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대졸 아니면 ‘심부름꾼’


원문주소 : http://bit.ly/G2xIu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일반 대졸 사원보다도 못한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매일경제가 1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 8일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한국의 종합우승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역대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00명에게 기능인들이 처한 현실과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을 물었다. 설문 결과 그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사회가 우리를 단 한 번도 우대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박모(29·가명)씨는 199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35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그래픽디자인 부문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금메달 덕에 박씨는 곧바로 국내 굴지 대기업 광고사에 입사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하지만 `기능올림픽 금메달` 효과는 딱 거기까지였다. `금메달`보다는 `실업계고 출신`이라는 딱지가 현실에서는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

같 은 해에 입사한 `대졸` 동기들과 하는 일에서 차이가 났다. 대졸 입사동기들은 프로모션 기획안도 제출하고 기획회의에도 참여하며 능동적인 업무를 해나갔지만 박씨는 회의에서 결정된 안들을 예쁘고 보기 좋게 디자인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2003년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메달을 딴 김영환 씨(가명)는 `기회비용`을 이야기했다. 김씨는 지방 공업고등학교에서 늘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학과 성적과 실습 성적은 최고였다.

김 씨는 선생님 권유로 기능올림픽 출전을 준비했고 3년간 준비한 끝에 메달을 땄다. 지금은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학교에서 10등 안에 들면 인근 공단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특채될 수 있었다. 그 길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들어간 친구와 내 연봉 차이가 4000만원 정도 나는 것 같다”며 “기회비용치고는 너무 크다”고 씁쓸해 했다.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기능인에 대한 대우가 낮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홍근삼 씨(69·사진)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배운 기술이 저를 평생 지탱해 준 힘이 됐고 나라가 보상도 많이 해줬다”고 말했다. 홍씨는 1967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16회 국제기능올림픽 양복부문에서 우리나라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기능인이다.

그 가 전하는 당시의 분위기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다. 금메달을 따고 돌아오는 귀국길은 말 그대로 금의환향이었다. 공항까지 마중나온 사람들이 `홍근삼 만세`를 외쳤고 김포공항에서 태평로까지 카퍼레이드도 했다. 당시 돈으로 100만원이라는 포상금을 받아 붉은 벽돌집을 장만하기도 했다.

홍씨는 “단순히 이런 환호나 포상금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술인` `기능인`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예전에는 기능인을 기능 자체로 평가했지만 요즘에는 `얼마나 공부를 못했기에 기능을 익혔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딴 후 40여 년이 흘렀지만 홍씨는 여전히 손수 치수를 재고 바느질을 한다. 손끝의 감을 잊는 순간 끝이란 신념 때문이다. 그의 옷만 찾는 단골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홍씨는 “IMF 외환위기 명퇴 바람에도 기능인들은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며 “후배들도 어렵더라도 자기 기능을 믿고 그 기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매일경제는 전했다.




Posted by 화난코더